2019년 6월 21일 금요일

물분자의 화학-3

물과 산,염기

 물화학 교과서에서(또한 많은 일반화학 교과서에서) 앞부분에 나오는 것이 수용액이 갖는 산성과 염기성에 대한 내용이다. 우리 위에서 음식물이 처리되는 과정은 중고등 과학교과서에 잘 설명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인상적인 것은 우리 위 속에 강산(pH 1 부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처음 접했던 중학 시절, 이렇게 강한 산이 위 속에 있는데 어떻게 우리 몸이 신기하게도 멀쩡하네? 이렇게 쎈 산의 역할이 뭘까? 등등 머리속에 여러 의문이 떠올랐던 기억이 있다. 우리 몸에 염소이온이 많으니, 당연하게도 위 속의 산은 HCl이다.
 물 속에서 수소이온농도가 곧 pH로 환산되는 것이므로 산도(acidity)는 수소이온농도에 달려 있는 것이다. 물속에서 pH의 범위는 0~14이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의 하나인 pH 0는 수소이온농도가 1M(몰농도)이고, pH 14는 10^(-14)M인 경우다. 물속에서 수소이온은 이 범위 안에 있다는 뜻이다. 물의 신비함은 여기서 다시 나타난다. 이 농도를 벗어나면 물속에 수소이온과 항상 짝으로 움직이는 수산화이온이 수소이온농도를 조절해 준다. 만약 신비한 물이라면 이렇게 양 극단 가까이 있는 수소이온농도를 갖는 것일게다. 그래야 일상생활에서 보기 힘든 어떤 현상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물속의 수소이온농도와 수산화이온농도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을 탐구하는 것은 바로 화학이란 과학 분야를 잘 보여준다. 화학은 어떤 현상에 대한 질문 "왜(why)?"를 근본적인 영역까지 갖고 가지 않는 분야다. 그러기 보다는 화학은 새롭게 나타난 물질을 찾고 그 물질의 특성과 성질, 응용분야를 탐구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산과 염기가 물화학, 일반화학의 앞부분에 나오는 것은 그것이 역사적으로 먼저 다루어져 왔던 연유도 있고 생활 및 산업에서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화학의 탐구 내용을 쉽게 보여주는 것에도 연유한다.
 산과 염기의 정의는 몇 가지로 구분된다. 고교과정까지 다루는 것은 Arrhenius의 산, 염기 이론, 그리고 Bronsted-Lowry의 산, 염기 이론이다. Lewis의 산, 염기 이론은 과거에는 고교과정에서도 다루었지만, 지금은 대학에서 다룬다. 앞서 pH로 표현되는 산, 염기는 첫번째 Arrhenius 의 산/염기 이론과 밀접히 관계된다. 화학 역시 일관된 이론으로 자연 현상을 정리하고자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화학 현상을 일관되게 산, 염기 이론으로 정리하려다 보니 이렇게 몇 가지의 이론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Arrhenius의 산, 염기이론에 따르면 수소이온을 내놓는 물질이 산이고, 수산화이온을 내놓는 물질이 염기이다. 물분자는 스스로 수소이온과 수산화이온으로 해리되는데 이 해리 반응은 가역반응이다. 즉 물 속에 수소이온을 내놓는 물질이 들어와서 수소이온농도가 커지면 물 속에 수산화이온의 농도가 줄어드는 결과가 발생하고 결과적으로 수소이온이 많은 상태가 된다. 만약에 수소이온농도를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다른 물질들, 예를 들어 흔히 버퍼링 물질(buffering material)이라 불리는 물질이 많이 존재한다면 수산화이온농도가 줄어들지 않고 유지될 수 있어 pH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자연의 물(natural waters)은 버퍼링 물질이 많아 비교적 안정된 pH를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물속의 생명체가 비교적 안정한 진화단계를 거쳐 오늘의 지구 생태계를 구성한 것은 이런데 연유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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